마드리드의 시위

아직 저녁이 되기 이전이지만, 이른 오전부터 관광지를 돌아다녔더니 노곤해서 침대에 누워서 노트북 컴퓨터로 인터넷 구경을 하고 있다. '둥둥 두둥' 북소리와 일률적인 구호가 들린다. 오늘은 금요일이니깐, 축구 경기를 하나? 한동안 그 소리를 무시하다가 화장실을 가는 길에 창문 밖을 보았다. 꽤 많은 사람이 행진하며, 그중에는 거대한 쿠바 국기가 보인다. 이게 무슨 일일까? 흥분해서 그 자리에서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간다. 울긋 불긋한 깃발들이 거리를 메웠다. 사람들은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른다. 스페인 어를 알아들을 수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려 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어를 잘하지 못하고, 영어를 하냐고 물어보는 것을 상당히 싫어해서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참 동안 멍하니 길가에 서서 시위대를 바라보았다. 이들의 구호가 나에게는 훌리건의 괴성과 구분할수 없다는 거슨 냉소적으로 흥미롭지 않은가? 라고 생각하며, 쉽사리 말 걸 수 있는 상대를 찾지 못해서 조바심내고 있었다. 시위대의 끝 자락에 있다가. 선두를 향해 걸어갔다. 앞으로 갈수록 차차 각 그룹의 성격이 많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들고있는 깃발이 달랐고, 시위대의 외모와 행동 또한 달랐다. 뒷부분은 쉽사리 상당히 극단적인 좌파임을 알 수 있었다. 시뻘건 깃발과 소비에트 깃발 수십 개가 거리에서 휘날린다. 앞부분의 시위대는 쿠바국기를 들고 혁명 50주년을 기념한다. 그들은 혁명을 운운하는 구호를 외쳤다. 뒤에서 앞으로 가는 시간이 꽤 걸리고, 거리가 꽉 차있는 것을 보아서 이곳에 모인 사람의 수가 꽤 되는 것 같다. 시위대의 뒤 쪽에는 머리를 박박 밀어서 흡사 스킨해드 같아 보이는 젊은 펑크가 태반이다. 그중에서 비교적 순하고 지적으로 보이는 한 사람에게 이 시위가 무엇에 관한 것인가 물었다. 그는 나에게 스페인의 '지역 자치 정부 제도'를 설명하고, 현 대표가 마이애미에 있는 반쿠바 단체 (후에 알파66임을 알게 된다)에 시 기금을 사용해서 후원했음을 질타하는 것 이라고 한다. 그의 영어는 스페인 악센트가 강해서 알아듣기가 어려웠고, 내가 스페인 정부와 정치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한 까닭에, 그와의 대화는 얼마 못 가서 마무리되었다. 가장 앞으로 가서 형광 조끼를 입고선 시위대의 움직임을 지휘하던 한 청년에게 같은 질문을 물었다. 그는 이 시위가 쿠바의 공산주의 50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드리드 시 내의 다양한 좌파/진보 단체가 모인 것이라고 했다. 스페인에는 사회주의자가 많으냐는 질문에, 그는 '보다시피'라고 대답했다.
사람들의 흐름을 따라서 한참을 더 앞으로 가니, 시위대는 광장까지 가지 못하고, 광장이 보이는 길목에 준비된 작은 강연 대에서 음악 공연과 선언문 낭독 등을 한다. 나는 아직도 이 시위의 정체성을 확실히 이해하지 못해서, 한 여자에게 시위를 나온 이유를 물어보니, 그는 PP당과 그 대표이자 현 마드리드 시장인 , Esperanza Aguirre Gil de Biedma를 부정 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공공시설의 민영화부터(의료, 교육, 그리고 심지어 수도료까지도), 쿠바 반혁명 단체 후원까지 많은 문제가 있다고 한다. 미국이 쿠바의 출입을 제한하는 것 또한 말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음날 12시에 솔Sol 주변에서 PP 후원자들의 행진이 있어서, 하루 전에 먼저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멈춰선 그 장소는 PP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의 맞은편이다. 무대 위에는 혁명 가요 등이 연주되고, 사람들은 따라부른다. 다양한 나이의 사람들이 있다. 나이가 지긋한 부부의 모습이 인상 깊다. 그 여자는 사람들이 든 깃발의 뜻을 알려준다. 아나키스트, 리퍼블릭 (프랑코 장군의 독재 이전 시절의 정치 제도), 공산주의자, 그리고 좌파 등의 깃발이 휘날린다. 날이 꽤 쌀쌀하다.

좀전에 행진할 때에는 길을 가득 메워 폭팔적인 에너지를 내뿜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한군데 모아놓으니깐 수가 적어 보여 초라해 보이고, 각자 다른 깃발을 든 모습이 약간 우스꽝스럽다. 어쩌면 낮에 현대미술관에서 보았던 리투비아 작가의 전시 서문의 한 구절이 계속 머리속을 빙빙 돌아서일까? 'Ideas of Socialism are resurfacing as a possible alternative to the extreme new realism. For younger generation, communism is becoming something very exotic...' 그 전시에는 리투비아의 한 도시에서 레닌의 동상을 철거되는 장면, CNN 등에서 수만 번 재생된 그 영상을 재편집해서 동상을 다시 세우는 것으로 보이는 작품이 있다. 전시장의 소개 글 중 다른 부분에는 현재 유럽 연합의 팽창은, 사회주의가 아닌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예전의 소비에트 연방이 공산주의를 빌미로 팽창하던 과정과 상당히 흡사하다고 한다.

근래에 종종 드는 생각은 A의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B는 사실, A와 공존하며 이질적이지만 필요에 의해서 서로 존재를 지탱하는 짝이 아닌가? 냉전시대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상대를 적대시함으로써 국가 활동의 당의 성과 시민의 정체성을 유지했다. 상용 프로그램을 일정 기간에 체험하게 하는 트라리얼 서비스를 제공한다. 프리소프트웨어를 운영하기 위해서 전문 인력이 관리 해야한다.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남성과 동등하게 하고, 신체를 축복하고,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건 6~70년대 여성주의는 표면적인 큰 성과를 이루지는 못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꽃, 광고 그 중에서도 빅토리아 시크릿 뿐만 아니라 여성의 신체가 등장하는 대부분의 광고를 통해서 전 세계 곳곳에 벌거벗은 여성의 신체가 등장하게 되었다.

메세지의 전복이 아닌 시각성 혹은 미학aesthetic의 전복이 일어난 것인가?

마드리드 거리에는 시위대가 들고있는 깃발 속 체 게바라 얼굴, 어쩌면 좌파 저항의 강렬한 시각적 상징, 이 요란한 불빛을 내뿜은 전광판 속의 파리 디즈니랜드의 미키마우스,어쩌면 자본주 ‘상품의 경험’의 대표적인 상징, 사이로 펄럭인다.

“계란이 먼저인가? 닭이 먼저인가?”의 의문일 수도 있지만, 파시즘 (단어 선택이 적당한가?)이 욕망(그 아주 악질의 폭력적인 혼동)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고, 그 욕망이 파시즘을 불러오는 것이 아닌가? 또한, 파시스트가 파시즘을 부활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 안의 파시즘이 파시트를 창출하는 것이 아닌가? (부시가 니오- 크리스챤 파시즘의 힘으로 재선에서 성공한 얼마 전을 기억한다) --- 아니더라도 보수의 탈을 쓰고 재-근대화 프로젝트를 벌릴 사람은 많으니, 그가 지금 당장 탄핵 되더라도, 또다시 그와 비슷한 사람이 다른 탈을 쓴 채로 나타나지 않을까? 두렵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런 상황을 부르는 것은 우리 안의 욕망, 폭력, 그리고 혼동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드리드 좌파들이 떼거리로 모였지만, 조촐한 공산주의 50주년 기념 행진에서 외친 구호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스페인어를 알아 듣지 못하는 나에게는 한 그룹이 외친 것과 다른 그룹이 외친것의 차이를 알 수 없었다.

택티컬(전술적) 미디어 프로젝트는 사회 문제에 반응 적(reactionary)이고, 전략적 공격의 대상을 극단적인 흑백논리로 단정짓는 것이 그 한계라고 의문에 대해서 질문한 나에게 C.A.E의 Steve Kurtz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반응적인 작업에는 문제가 있지만, 전술적 미디어는 반사적(reactive)일 필요가 있고, 현명한 방법론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전략에는 폭력적인 수단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 지점에서 그 그룹의 다른 한 명의 스티브는, 폭력은 불가피(unavoidable) 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들이 말한 폭력은 파괴적인 폭력이 아니라 추상적인 폭력일수도 있다. 그 폭력의 허무한 결과에 대해서 물었다. 그들은 한 명의 예술가, 혹은 하나의 작품은 사회에 큰 변화를 불러오지 못하지만, 좀 더 큰 흐름이 동참해서, 거대한 은행에 자신은 하나의 동전을 추가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흐름은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각자 다른 깃발을 들고선 시위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촛불시위와 유사한 점을 찾았다. 그것은 어디까지가 개인의 욕망의 표출과 이기적인 상상력이고, 어디까지가 라이프스타일 추구인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의문은, 이전의 시위도 이랬을까? 사회의 구조를 바꾼 혁명이 거리를 덮치던 시절의 시위대도 지금과 같이 이기적인 상상력을 품은 혼란스러운 개인들의 집합이었을까?

다음날은 폭설이 내려서 외출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인터넷 신문을 검색하니, 솔 SOL 근처에서 내가 본 행진과 같은 깃발을 든, 하지만 정 반대의 구호를 외치는 대규모 반-카스트로/ 반-공산주의 집회가 열렸다고 한다.

현재와 가까운 미래에서 사회적인 참여와 정치적인 발언이란 어떤 것일까? 어떠한 것이 현명한 방법일까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날 꿈에서는 리투니아의 ‘스탈린월드’ , 철거된 레닌 동상 등이 수두룩한 놀이 공원에서 관광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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